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로마 제국/역사 (문단 편집) == 황혼 == || || ||[[파일:1674808894.jpg|width=100%]]|| || 1190년대 유럽 판도[* 후대의 그리스인들은 이 시기 동로마 제국의 영토를 [[메갈리 이데아]]의 이상으로 삼았다.] || 1180년 [[마누일 대제]]의 사망 이후 제국은 다시 급속도로 몰락하기 시작한다. 마누일 대제의 후계자였던 [[알렉시오스 2세]]는 어렸고, 황위를 놓고 내분이 발생하였다. 알렉시오스 2세와 라틴인 섭정단을 쫓아내고 즉위한 [[안드로니코스 1세]]는 뛰어난 능력(?)으로 제국을 외교적으로 궁지로 몰아넣었고, 마누일 대제 시절의 친서방 정책을 모두 폐기하였으며, 군사적으로도 병크만 저질렀다. 이에 보다못한 민중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앙겔로스 가문의 [[이사키오스 2세]]를 황제로 추대하면서 [[콤니노스 왕조]]는 몰락했다.이사키오스 2세는 재위 초에는 [[시칠리아 왕국]]을 격파하고 마누일 대제 시절 외교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등 선정을 하였지만, 얼마안가서 그도 [[안드로니코스 1세]]와 별반 다를게 없는 인물이라는게 밝혀졌다. 이사키오스 2세는 [[제3차 십자군 원정|3차 십자군]]을 비협조적으로 대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아이유브 왕조]]와 비밀협정을 체결하는등 서방인들을 분노하게할 조치들을 취했다. 이로 인해 서방 세계와의 관계는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또한 이사키오스 2세의 계속된 실정으로 약 200년 만에 [[불가리아 제2제국|불가리아]]가 제국에서 떨어져나갔고, 이사키오스 2세가 불가리아인들을 막기위하여 보낸 장군들은 죄다 반란을 일으켰다. [[콤니노스 왕조]] 이후 제국의 중심 영토는 유럽이 되었기에, 불가리아가 제국에서 독립해나간 것은 제국에 큰 위협이 되었다. [[이사키오스 2세]]의 실정을 보다못한 그의 형 [[알렉시오스 3세]]가 이사키오스 2세를 실명시키고 황위에 올랐지만 이미 상황은 너무 악화되어 있었다. 이 시기, 조금 더 넓게는 1180년 마누일 사후의 제국은 해군력의 약화로 에게 해에서 해적이 창궐했고, 제위계승의 혼란상으로 지방 통제력이 붕괴하였다. 옛 콤니노스 왕가 소속인 [[키프로스의 이사키오스 콤니노스]][* 요안니스 2세의 아들의 딸의 아들이다.]라거나, [[레온 스구로스]] 등을 필두로 지방 할거가 전면화되기 시작했다. 영어 위키백과에는 [[https://en.wikipedia.org/wiki/Template:Rebellion_and_secession_in_Byzantium,_1182%E2%80%931205|'Rebellions, secession, and autonomous magnates in the Byzantine Empire, 1182–1205'(동로마 제국에서의 반란, 분리독립, 독자행동하는 유력자들)]]라는 틀이 따로 만들어져 정리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래도 알렉시오스 3세는 당면한 제국의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제국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으나 앙겔로스 황족들은 권력을 탐해 서방 십자군을 로마 내정에 개입하도록 부르는 패착을 저지르고 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